2022년 9월 4일 일요일

선불교의 흠결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깨달음을 넘어 붓다 까지

 선불교의 흠결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에 대한 신행, 즉 부처님의 존재를 믿는 불제자로서의

기본 수행 마음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차라고 하는

실정인데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마음이 부처라면 모든 중생이 이미 다

부처인데 수행은 왜하고 불교는 왜 믿는지 의문스럽다.  마음이 부처라

면 종교는 종교도 아니고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신심 깊은 불제자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종

교는 세계 그 어는 종교에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둘째, 견성, 즉 깨달으면 부처가 됐으니 막행막식하고 사음도 가하다

고 하는 것이 오늘날 선불교의 현주소다.  계율이 없는 불교는 불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계율이 있기 때문에 불교가 2500여 년을 존속 유

지되어 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셋째, 경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잘해야 아라한 자리에

불과한 조사들의 어록들을 부처님의 경전보다 더 소중히 하는지 이유

를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한국불교가 살아남으려면 대승경전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넷째, 염불을 하근기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염불 수행을 제대

로 해본 적이 없이 하근기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염불 수행

의 오묘한 맛과 쉽고 빠른 경지 증득을 모르고서는 절대 염불선을 하

근기 수행이라고 모독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화두

선은 상기병, 정신질환, 주화입마에 걸리기 쉬운 수행법인 반면 염불

수행은 부작용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효를 다해야 한다.  부처님이 주관하시고 불과를 중한 청정하

신 큰스님이 집전하시는 천도대재를 치르고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

그리고 친인척들을 하늘로 천도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은 마음의 산물이 아니다.  어찌 마음이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  마음이 부처님이라면 그것은 부처님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법화경>> <비유품>의 부처님 말씀처럼 공성의 증득으로 붓다라

할 수 없다.  32상 그리고 10력 등 모든 붓다의 공덕을 갖춘 색신보신

을 성취해야 붓다인 것이다.  큰스님께서는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라고 확인하신다.

 

일곱째, 생사관이 없고 육도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지옥이

없고 천상이 없다면 <<아함경>>에서 설한 육도 윤회는 거짓이란 말인

가?  그것은 부처님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참선만이 유일무이한 깨달음의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독선

적이고 배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위빠사나선이 깨달음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 분명히 하셨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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