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한국 불교, 올바른 생사관부터 정립을 -자재 만현 스님의 법세계를 다시 본다-/붓다의메시지 존평


"사체 부패의 첫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자기 분해,

즉 자기 소화이다.  인간 세포는 효소를 이용해 활용이 가능한

분자 단위로 쪼개지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세포의 통제

를 받던 효소들은 이제 아무런 제한없이 세포를 먹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러면 사체 안에 있는 액체가 흘러나오게 된다.  일

부 박테리아들은 그 액체를 타고 둥둥 떠다니며 사체의 머나먼

변방으로까지 이주한다.  어디를 가도 박테리아가 가득하다.

 

이제 무대는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바로 팽창 단계다.  박테

리아가 우리를 먹는 과정에서 가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생기

는 과정이다.  이른바 정상적인 소화과정에서 생겨나는 장 가스

와 차이점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그 가스를 밖으로 내

보내지만, 죽은 뒤에는 위 근육이나 괄약근이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배가 팽창하는데, 박테리아가 그 중 많은 복부

가 가장 두드러지게 부풀어오른다.  다른 부분에서도 팽창은 일

어난다.  대표적인 것은 입과 성기.  남자일 경우 음경과 고환이

대단히 커진다.  그렇다.  멜론 정도의 크기일까?

 

사체 부패 2주 정도가 지나면 유충들의 크기가 예전의 쌀알

크기에서 밥알 만하게 커진다.  유충들이 우글거리는 소리가 사

체에 한두 뼘 이내로 머리를 바짝 들이밀면, 뭔가 소리가 들린

다.  유충들의 사체를 갉아먹는 소리.  내 곁을 따라다니며 설명

을 해주던 연구원이 알려준다.  '꼭 뻥튀기를 갉아먹는 소리죠'

간혹 몸통 자체가 터지는 때도 있다고 한다.  다시 연구원이 설

명해준다.  '그 때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납니다'  그렇게 해서

3주 정도가 되기까지는 장기의 잔해를 분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뒤에는 수프처럼 된다.  영락없이 노란색의 닭고기 수프다."

                                                  어느 서구 지식인의 구상관 하나

 

 

마음 공부를 위한 불교의 관법에는 자비관도 있고, 수식

관도 있다지만, 앞에 인용한 글도 휼륭한 관법의 하나가 아닐

까 싶다.  말하자면 구상관 혹은 백골관..... 읽기

거북스럽다는 첫 느낌 따위는 중요한 것이 결코 못된다.

 

이 글은 서양의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미국 테네시대학의 메

디컬센터 안에 있는 인체 부패를 연구하는 시설을 꼼꼼히 들러

본 뒤 쓴 냉철한 보고서의 일부다.  지난 해 나온 책 <<스티프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메리 로치 지음, 파라북스 펴냄)의 한 대

목인데, 저자 특유의 쿨한 유머 감각이 놀랍고 리얼한 묘사 때

문에 그저 정신이 번쩍 든다.

 

 

 

생사관, 이것이 정말 큰 문제

 

 

그렇다.  바로 그것이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저자는 때로는

불교경전 <<염처경>>을 들먹인다.  그것이야말로 지수화풍

으로 이뤄진 인간의 신체라는 것, 그리고 오온의 변화

에 다름 아닌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의 문제에 대한 그들 나

름의 절실한 관심이리라.

 

서구사회의 지성들은 이제 동서양의 핵심 고전들에 아무런

편견 없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생사관을 정립하고 있는 중이라

는 좋은 증거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 싶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렇다.  생사관, 이것이 정말 큰 문제다.

 

(선문화) 6월호에 나는 자재 만현 스님(춘천 현지사)의 법문

집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소개할 기회가 한 차례 있었

고, 현재의 조계종단에는 파천황의 문제 제기로 들릴 수

밖에 없는 그 스님 특유의 법 세계를 의미 있게 일별해 본 일

이 있다.  당시, 현재의 한국 불교의 상황과 인식의 측면에서 그

토록 생각과 법 세계가 다르다면 "창종을 못할 것도 없

다."는 만현 스님과 일문일답 내용도 함께 음미했었지만, 고백

컨대 미진했던 대목이 적지 않았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생사

관의 문제에 대한 소개였다.

 

사실 지난 6월호의 만현 스님 법 세계의 소개와 함께 얹어봤

던 나의 질문은 간단치 않은 것이라고 본다.

 

1천만이 넘는 불자 수를 자랑하는 한국 불교이지만, 과연 1

천 년 전의 중국 조사선에 매달리면서 껍데기만 남은 것은 아

닌지, 그래서 이 '지구촌 종교' 불교의 상황에서 우물 안의 개

구리 신세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물었던 것이다.

 

이번 호 지면에서는 생사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만현 스님 법 세계에서 커다란 특징을 이루는 핵심이 생

사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만현 스님은 지금의 한국 불교

가 '견성=성불'로 보는 것에 반대하고, 대신 견성이란 공부의

첫걸음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철저한 지계를

강조함으로써 현재의 조계종과는 수행론에서부터 180도 다르

다.  하지만 이런 차이란 결국에는 불교 생사관을 둘러싼 근본

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이지만 현재의 한국 불교처럼 "지옥과 극락은 마음의 산

물일 뿐"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놓고 나머지 복잡한 문제를 나

몰라라 하며 지치도외할 경우, 매우 유감스럽게도 두 가지의

문제를 떠 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선 지난 호의 지적처럼 본디의 '장대한 종교'인 불교의 자

취는 온데간데없이 겨우 마음의 종교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 경우 <<법화겨>> <<화엄경>> <<아함경>> 등의 핵심

가르침과 배치된다는 점도 여간 우려스러운 것이 아니다.

 

즉 <<아함경>> <<지장경>> 속에 등장하는 지옥을 포함한 장

대한 세계가 겨우 대중교화를 위한 편의적인 방편 내지 비유

정도로 치부되고 마는 결과란 정말 자가당착의 경우라서 유감

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윤회와 전생의 문제를 포함한 불

교 고유의 생사관 문제 역시 미긍의 늪에 빠져버려 거의 '믿거

나 말거나'의 수준으로 밀려나 버리고 만다.  역시 대단한 착오

가 아닐 수 없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35~39쪽/조우석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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