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8일 금요일

증험세계를 담은 보경/붓다의 메시지 존평

 증험세계를 담은 보경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견성 오도에 대한 글은

지금까지 어떤 책에서도 엿볼 수 없는 매우 실재적이고 명료한

큰스님의 체험담이었습니다.  


본래 면목, 존재의 진상, 우주의체성을 철견하신 큰스님의 

경험담은 의식을 혼탁케 하는 선문답으로 일관하는 오늘날의 

선사들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현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큰스님 스스로의 실제적인 증험 세계를 선사들의 증험담보다도 

 덕욱 현실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어조를 통해서 선남자

선여인들의 마음 속 깊이 울리는 메아리로 공명시켜 주셨

다는 점에서 불교 역사에 커다란 이정표를 남기셨다 할 수 있

습니다.

 

'견성이 곧 성불'이라는 선가의 기치는 분명코 잘못됐다

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오늘날의

불가에서는 외골수적인 간화선을 통한 견성 일변도의 수행

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견성이 마치 최고의 경지요 또는 궁

극적 경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힌두의 요가 수행자들이 설파

한 "네 안에 신이 거한다."라는 말은 불가에서 말하는 견

성의 경지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견성을 통해 신

이 거함을 알아도 생사관을 확실히 얻는 것은 아니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큰스님 말씀대로 아라한을 통

해서 얻는 것으로는 지옥과 육도 윤회를 확인할 수 없으며, 사

람들이 목숨을 잃은 후에 이디로 가는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이제 우리 모든 구도자들과 선사들은 솔

직해져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오늘날의 구도자들과 불제자들

에게 솔직할 것을 사자후하셨습니다.

 

이는 고대 기독교와 고대 유대교에서도 진실함(솔직함)을 제1

의 미덕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잘 뒷받침해 줍니다.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이러한 가르침들은 오늘날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제 전 세계적인 문화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

다.  동서양 고금을 통해서 그리고 지구 전역에 걸쳐 면면히 내

려오는 실효성 있는 가르침들은 잘 새겨보고 옳다고 판단하면

이아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큰스님 말씀대로 솔직해야 합니다.

 

즉, 생사관이 확립될 때까지는 치열한 구도 정신의 고삐를 놓

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매우 간명한 어조로 오도송을 쓰셨기 때

문에 일반 선사들의 오도송과 격이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21

세기 컴퓨터 문명의 총아격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프로그래

머라는 직업군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프로그래머에게 있어서 통용되는 이야기는 바로 "컴퓨터가 

이해하는 프로그램은 바보도 작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프로그래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이 프로간에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21세기 프로그래머들의 세계는 다른 프로그래머들도 이해하

기 쉬운 그러한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쇼팬하

우어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글처럼 쉬운 것은 없다. 반대

로 중요한 사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글을 쓰는 것

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라고 설파하였습니다.

 

깨달음의 세계에 있어서 구도자들은 자신이 증득한 경지를

다른 구도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어

야 합니다.  오도송이라고 어렵기만 해서는 그것은 구도자의 정

신을 방황케 하는 외도의 기운이 서린 잘못된 도리라 할 수 있

습니다.  큰스님의 오도송처럼 오도송은 물과 같이 담담하고 소

나무처럼 청청하게 인식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큰스님의 오도송을 읽는 순간 머리가 가벼워지고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선사의 오도송을 읽고

머리가 답답해지고 어지럽고 복잡해진다면 그것은 올바른 오도

송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21세기는 무모한 강요적 수행 시대

가 아니라 이해되어지는 열림의 수행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

다.  큰스님의 오도송 자체는 21세기 한국 불교 아니 전 세계

수행 문화가 나가야 할 진귀한 미증유의 이정표를 구도자들의

앞길에 새겨 놓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의 오도송

뿐만 아니라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도처에 아로새겨져 있

으며 큰스님의 경험이 녹아있는 주옥같은 구절들을 읽으면 황

홀감을 넘어서 현란함을 느낄 정도로 지극한 아름다움을 경험

합니다.

 

또한 큰스님께서 !표를 사용해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서 단언한 것은 그만큼 확실한 믿음과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

다.  이는 미국 대학교수가 어는 분에게 너무 확신성이 결여된

논문을 쓰게 되면 그 논문을 읽는 사람에게 호소력을 주지 못

한다고 경책하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의

지 빈약으로 글을 써서 어떻게 타인들을 감화, 설득, 호소력을

심어줄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글을 쓸 때 확신이 있으면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래야 글을 읽는 사람들도 시원시원하고 믿음을 갖게

됩니다.  큰스님의 글을 비방하는 입장에서는 단언하는 형태로

비칠지 몰라도, 긍정적인 시야로 큰스님의 글을 바라보면 깊이

있는 통찰과 광오한 법력이 담긴 일필휘지의 기운

을 통해 지극히 명료한 큰스님만의 심법을 엿볼 수 있습

니다.

 

참고로 큰스님은 겸허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나'라는 에고

에 얽매인 입지를 책 어디에서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책에

는 불과를 증위하신 분이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불

과를 증위한 분이 없을 시에는 큰스님께서라도 직접 나서야 하

지 않느냐는 뜻이라고 사료됩니다.  잘못된 구도자들 중에는 큰

스님이 불교의 정법을 펴는 것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그러나

만약 큰스님께서라도 나서서 불교의 참신한 계몽과 잘못되어

온 불교의 오래된 구습을 완전히 쇄신하고 환골탈태를 이룬다

면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단지, 큰스님의 천도재 비

용이나 계산하고 책이 얼마나 팔렸느냐만 생각하는 편협된 마

음으로는 이를 지혜롭게 볼 수 없을 듯싶어 한 마디 해둡니다.

 

수행자들과 구도자들의 세계에서는 흔히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산을 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마치 산을 넘어본 것

처럼 말하는 사람은 위험하다."라고 말입니다.  저 자신도 가능

한 한 제가 경험한 내용 이상을 말하려고 하지 않으려 하는데,

다만 미혹한 구도자들이 억지를 부리며 큰스님을 비아하여서

제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읽고 얻은 바를 토대로 살을

더 붙여서 표현하였습니다.  이 점 큰스님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합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지 않고서는 산 정상의 경치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큰스님은 산 정상에 올라서 산 전체를 조망한 후 그

경험을 글로 쓰셨는데 그것이 바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입니다.  그러니, 산 중턱에 올라가고 있는 구도자나 산 아래에

서 맴돌고 있는 미혹한 구도자들은 큰스님의 가르침을 겸허한

마음으로 배우거나 아니면 조용히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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