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한국불교, 자기 갱신 없이 앞날 없다/붓다의 메시지 존평

  

한국 불교, 자기 갱신 없이 앞날 없다

-조우석-

 

 

 

우리가 덕담을 겸해서 던지곤 하는 한국 불교에 대한 호의적

평가란 대강 이쯤 된다.  "고대 이래 10세기 넘는 지금까지 동

북아시아 선 불교의 수행 전통을 간직하고 있고, 특정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우리 기층문화의 소중한 유산."

 

사람들의 평균적 인식을 반영하는 이런 평가에 단골로 따라

붙는 메뉴는 또 있다.  통불교라는 자랑..... 선 수행을 중신

으로한 종풍에다 교종과 밀교가 두루 포함된 불교 백화점이라

는 주장이다.  이런 통념이 분명 검증된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종종 턱없이 비약과 함께 '기분'에 취한다.

 

"이웃 궁국은 문화혁명 이후 망가진 자기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 불교를 배우려고 유학생 파견하고 있잖아. 일본 불

교? 그들은 스즈키 다이세츠 이래로 '학문화된 불교'라서 선 수

행의 전통은 부실하다고 봐야지. 서구 사회가 1868혁명을 전후

해 불교에 괸심을 가진 게 벌써 수십 년인데, 불교 세계화의

이 시대에 한국 불교의 전망은 좋다고 봐야지."

 

과연 그럴까?  의심받지 않은 진리란 썩기 마련인데, 1천 년

전통의 한국 불교는 과연 건강한가?  조선조 때 권력에 의해 강

제로 선종과 교종이 합쳐지고, 이후 축소 일변도로 흘러와 조

선 중기 이후 지금까지 정말 필요했던 자기 갱신에서 한참 멀

었던 역사를 막연하게 '통불교'라고 일컫고 있는 것은 아닌가?

 

9세기 중국 고대의 당나라에서 시작된 선 불교란 본디 인도

불교와 중국 문화, 도교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제3의 변용인데,

그 조사선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불교 패러다임의

전부일까?  혹시 조사선이란 오랜 동어반복의 과정 속에서 많이

진부해지고 활력을 잃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한국 불교의 역량이 만천하에 유리알처럼 들여

다보이게 된 이 시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21세기 초입의 지

금 시대란 불교가 고대나 중세 때와 또 달리 '전 지구적 종교'

의 차원으로 대두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 앞서 티벳 불교나 남방 불교, 여기에 위빠사나

선 등이 서구에 먼저 소개됐고, 영향력 역시 한국 불교에 비해

크다.  티벳 불교 들이 '속이허한' 한국 불교에 여수입된 지도

10여 년이 됐다.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을 포함해 불교 관

련 영문 저술의 번역물이 독서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

다.  급한 마음에 사람들은 미국 명문대 출신 제자들을 길러낸

숭산 스님의 업적을 들먹이지만, 그건 외려 서구 콤플렉스를

반영할 뿐이다.

 

서구사회가 그들 언어로 노자의 <<도덕경>>이나 공자의<<논

어>>등 동양고전들을 휼륭하게 번역해 온 역사가 이미 2백여

년이고, <<법화경>>을 포함한 불교 경전의 번역 역시 우리를

앞선 지 오래라는 점도 이미 상식이 됐다.

 

선 참구 수행만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속 좁게도 외도로 내

모는 이 와중에 '동북아 선 불교의 본거지'라는 덕담 혹은 자랑

이란 철모르는 소리가 아닌지를 되물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조우석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