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지금 서구는 올바른 생사관에 목마르다.


현재 한국 불교가 봉착한 이런 엄청난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

도 올바른 생사관의 정립은 절대로 중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앞에 언급한 '마음의 종교' 수준으로는 불자를 포함한 수많은

이 시대의 대중들이 당면한 지적 혼란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대중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커다랗고 정

확한 그림을 불교가 그려줄 수 없다면, 소망스러운 목표인 '불

교=지구촌 종교'는 역부족이다.

 

앞에 인용한 단행본 <<스티프>>도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서

구사회 엘리트들의 진지하면서도, 그러나 실체에서 거리가 없지

않아 꽤나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노력의 한 자락을 보여주지

만, 그런 사례는 실은 부지기수이다.

 

이를테면 지난 해 출간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미 하버드

대의 심리학자 스티분 핑거의 단행본 <<빈 서판>>(사이언스 북스

펴냄)만 해도 그렇다.  1,000쪽 가까운 묵직한 분량의 이 책

2003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의 최종 후보작이자 2002년 아마

존닷컴 에디터가 선정한 최고의 과학저술로 평가받은 이 책은

현 단계 인간의 마음 내지 영혼을 둘러싼 서구 지식사회 지식

의 전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 영혼의 실체 규명과 올바른 생사관 정립에

목말라하는 서구 지식사회의 몸부림도 간취할 수 있다는 얘기

다.  영혼과 생사관 문제에 관한 한 그토록 오랜, 그리고 넓고

깊은 노하우가 있는 불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 때, 서구사

회는 그들의 지적 전통 안에서나마 나름대로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한다.  물론 자기네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맴맴돌이를 하면서도, 자연과학의 최신 성과를 토대로 해서 자

기들 나름의 영혼관, 생사관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면서도, 결국에는 한계에

봉착한다는 점이 함께 눈에 뜨인다.

 

이를테면 저자 스티분 핑거에 따르면, "인간 영혼, 인간 마음

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서구의 지식 전통 중에 가장 힘

이 센 두 개의 이론이 바로 '빈 서판' 이론과, '기계 속의 유령'

이란 이론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이것이 생물학을 포함해 과학

적 토대가 없는 사이비 과학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선 빈 서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깨끗이 닦아낸 칠판'이

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상'에서 나온 말.

 

즉 인간의 마음이란 본래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깨끗한 백

지 상태라는 신념을 반영한다.  따라서 착한 본성이나 악한 마

음은 물론 영원한 진리나 신의 관념 따위란 것도 이 깨끗한 마

음에 그림을 그려준 교육과 경험이 심어준 '정보들의 더미' 혹

은 '환영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빈 서판 이론을 들춰보면 서구사회의 어제와 오늘이 한꺼

번에 보인다고 나는 본다.  즉 인간은 본래가 백지상태를 가지

고 태어나니까 귀족 - 평민 등의 신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

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서구 근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가 하면, 동시에 '인간 개조'의 헛된 꿈을 가

질 수도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열망 혹은 우격다짐식의

사회적 열정으로 곧바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20세

기 초중반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그들이다.

 

 본디 텅 비어있는 인간 마음에 전혀 새롭고도 바람직한 그림

을 그려 넣어서 (프로그래밍을 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즉 전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자는 맹목적 욕심으로 마구 치

달았던 것이다.

 

그러면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또 다른 신념이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인간의 육체란 마치 시계나 자동차와도 같은 '기계'에

불과하지만, 이 속에 담긴 마음이란 육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기 마련인 별도의 실체라고 굳게 확신을 하는 또 다른

신념이다.  


즉 육체가 공간 안에 존재한다면, 마음은 물리적 공

간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유령처럼 존재하는 제3의, 비물질

적인, 그리고 불멸의 존재라서 육체 따위와는 분리가 가능한

그 무엇이라고보는 것이다.  어떠신지.  


이런 분석에 왠지 비아

냥거림 내지 조롱의 분위기가 들어있다는 점이 가늠이 되시는

지..... 즉 인간 마음을 보는 이런 두 개의 신념체계는 인지심

리학과 언어심리학 분야 서구 최고의 학자인 핑커가 보기에는

가짜 과학에 불과하다.  왜?  그는 인간의 진정한 주인은 유전자,

즉 DNA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핑커가 보기에 이 진정한 주인공인 유전자를 제쳐놓고 인간

본성을 '텅 빈 칠판'이네 뭐네라고 섣부르게 바라보거나, 마음이

란 것을 기계에 다름 아닌 육체 안의 어떤 유령 내지 실체 따

위로 보는 관념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핑커의 이론이 또 다른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한계란 '생물학적 결정론'을 말한다.  즉

인간이란 존재를 유전자의 장난에 다름 아니라고 보는 생각 말

이다.  이 경우 적지 않은 당혹스런 결론들을 피할 수 없다.  신

적인 높이를 다투는 인간 고유의 위대함이나 성취란 것도 단박

에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39~42쪽 조우석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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