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작은 열반과 큰 열반/붓다의 메시지 존평

 

아라한이 작은 열반에 만족하지 않고 <<법화경>>에서 가르

치는 대로, 보다 높은 위인 보살 붓다가 되기 위해 이사

바세계에 몸을 받아와야 한다.  아라한이 되고 난 뒤 다시 대비

심을 발해서 자기의 원력에 따라 이 세상에 몸을 받아온 뒤에

후퇴 없는 수행 정진을 거듭해야 한다.  그 뒤 결정적으로 부처

의 위신력이라는 절대적인 가피에 의해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다음의 단계가 바로 보살.

 

"아라한이라 해도 성중 하늘에 태어났다가 남섬부주(인간세상)

에 다시 오면 잘못된 길에 빠져들 경우 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

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 45쪽, 이하 같은 책)는 만현 스님의 지

적도 도를 이뤘다는 수행자들 사이에서 섣부른 법을 설하는 행

위에 대한 천둥소리로 들어야 옳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불

과를 증한 대성자는 엄청난 빛으로 이뤄진 자신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절대계, 즉 상적광토인 부처의 나라에 비로소 두

게 된다.

 

흥미롭다.  고백하지만 미욱한 나는 평소 의문 하나를 품어왔

다.  인간 생사에 관한 의문과 연결된 것인데, 밝히자면 이렇다.

 

화두를 타파했다는 수행자들의 마음 세계란 어는 정도일까?  확

철대오를 했다는 선사들이 도달한 깨침의 수준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또 전등 조사들의 깨침이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일

까?  여전히 미욱한 나는 이런 의문 앞에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유는 경계에 매달려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그 오묘한

깨달음의 세계를 전하기 어렵다는 말 앞에 질려서 그만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현 스님의 법문 이후

앞서의 의문들은 조금은 명쾌해졌다.  "경계가 뒤집혀 온 세계가

안팎이 훤하여 공이 되는 세계"(44쪽)인 견성에도 강약의 단계

가 여럿 있다.  크게 깨쳐 오매일여가 되어 꿈에도 법문을 하는

단계에서 더욱 계율을 견지하여 두타행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또 화두 타파 이후 아라한에 이른 뒤에도 무수한 단계가 더

있으며, 이런 단계는 인간의 노력이라는 자력 외에 타력의 부

처님 가피가 전제가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 경우 불교의

세계란 더 할 나위 없이 장려해지고 지옥과 극락이란 마음의

산물일 뿐이라고 하는 섣부른 통념에서 벗어날 경우 불교 세계

란 진정한 위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에 따르면 지옥은 분명히 존재한다.  비록

우리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영체(영혼체)세계의 남방 지장궁

방향에 있다는 점, <<지장경>>에 등장하는 지옥이란 분명 존재

하는 지옥의 일부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 중 중지옥의 한 곳

의 경우 열 존가락 손톱 밑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존재한다.  이곳에서 우리의 가련한 영체는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까무러쳐도 하루에도 만 번이나 죽고 다시 만 번을 되살아나야

하는 지독한 벌을 받게 된다.

 

앞에서 영체를 말했지만, 자재 만현 스님에 따르면 영제야말

로 진짜 생명체로 파악된다.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 빠져나가

는 몸이 진짜 매미이듯, 사람이 죽을 때 사대로 이뤄진 것

에 불과한 거짓 몸뚱아리를 떠나는 진짜 생명체가 바로 영체이

다.  따라서 이런 파악에서 앞서 언급했던 서구의 심리학자 핑

커가 냉소적 시각으로 언급했던 육체 마음의 이분법은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다음 자재 만현 스님의 발언을 귀담아 들어보자.  불교가 훨

씬 위대한 종교 세계로 성큼 내 안에 들어온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생에 선근 공덕이 있어

온갖 마장을 이겨내고 정진을 멈추지 않아 크게 도를 깨친 이

라도 음행을 저지르며, 또는 불보살과 지옥 극락이 실제로 있

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을 뿐이라는 망언을 통해 부처님

과 법을 왜곡 능멸한다면 무간지옥에 빠져나올 기약이 없습니

다.  불교에서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많은 선행을 행하라'고 가

르칩니다.  궁극에는 자정기위해서 생사의 해탈을 바라는 위대한

종교입니다."(43쪽)

 

이 밖에 변화술에 능한 천마의 속임수로 부처님을 보았

다는 등속의 언술에는 상대적으로 초연해질 수도 있다.  확실히

우리 중생들은 과거의 도인들이 보여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인 천안통,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알아체는 타심통, 나와 다른 사람의 전생을 아는 숙명통

을 포함한 신족통, 누진통 등의 신통력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앞날을 말하고 병을 낫게 해주는 영

체은 주로 저급한 영이 인간 몸에 빙의하여 생기는 수준의 신

통력이라는 것이 만현 스님의 말이다.  하지만 아라한 성자만

돼도 빙의가 일절 없으며, 영체에서 보름달 같은 백색광이 뿜

어져 나와 일체의 귀신이나 외도의 하늘 신들이 혼비백산한다

는 메시지는 명쾌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생사관을 전제로 하고 우리가 알만한 동서고금의 주요

수행자와 철학자들의 깨침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도

이 잭에는 꽤 등장해서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이를테면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그는 '자성은 본 사람으로

규정된다.  11세기 전설의 성자인 밀라레빠.  그는 정토의 상품상

의 보살로 왕생했다.  또 인도의 용수 마명 무착 천친 호법,

중국의 현자 혜원, 우리나라의 원효 의상 서산 함허 스님들

의 경우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한 정토 보살들이라고 언급된다.

 

이런 언급이란 '큰 종교'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 불교의 세계

가 동서고금의 주요 수행자들과 종교인들을 배척하지 않고 외

려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눈 여겨봐야 한다.  불교 외에도 윤회

를 말하는 등 불교에 버금가는 철학을 가진 힌두교나 자이나교

의 경우 그 세계의 위대한 성자들도 "중국이나 한국 불교의 대

선사라는 분들보다 못할 게 없고"(133쪽)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아라한급이나 상품 보살급의 수준"(13쪽)이라는 발언은 정말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런 발언은 우리 한국 불교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기

자랑에 정신 팔리지 말라는 것, 그러나 그들은 '작은 열반'에

이르렀을 뿐 진정 불신(보신과 법신)을 구족한 부처의 존재와는

거리가 있다는 당당한 발견으로 이어진다.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유태교 이슬람교 등의 수행법으로도 휼륭하게 삼매에

들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난 초인이나 도인이 될 수는 있으나

부처와 부처의 위대한 법에 귀의하지 못한 '외도'일 수밖에 없

다는 것이다.

 

"나는 말합니다.  유교의 격물치지, 힌두교의 유가 탄트라, 이

슬람교의 수피즘의 명상 수행, 유태의 카바리즘 수행으로도 우

주의 궁극이나 존재의 근원까지를 깨칠 수 있습니다.  힌두의

요기인 부레 바바, 조선 유가도인인 정북창 같은 도인도 이 세

상에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붓다는 아닙니다."(135쪽)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46~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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