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 수요일

법신에서 보신 개념으로 대전환/붓다의 메시지 존평


그러면 만현 스님 법문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법신

개념 위주의 불교'에서 보신개념 위주의 불교'로 대전

환일 것이다.  보신 개념으로 불교 세계를 전면 재구성하는 것

이다.  자재 만현 스님의 말대로 필자는 그런 불교관을 불교 세

계의 새 패러다임 도입과 구축 노력이라고 보는 쪽이다.  대승

경전에 나타난 핵심 정보와 사항이 새롭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읽어보자.

<<법화경>> 16장의 경우, 부처는 "나의 말은 진리이므로, 나

의 말을 믿으라."는 권면으 세 번 되풀이한 뒤 자신이 지난 40

년 간 이 땅에서 설법을 했던 '역사 차원의 석가모니'가 아니

라, 백천만 아유타겁 동안 이미 부처였다고 설파한다.  즉 절대

세계에 따로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부처라는 점을 언명

한 것이다.  따라서 2500년 전 출현한 석가모니란 중생을 위한

현현의 한 방식이었을 뿐이다.

 

당시 제자들은 일상의 차원에 갇힌 채로 부처님 말씀에 그저

당혹해 한다.  11장 <견보탑품> 에서 현실의 이 땅인 영취산

바로 그 자리에서 다보탑이 땅 속으로부터 솟아오른다.  더욱

놀랍게도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는 곳마다 나타나 부처님의 법

문이 옳다고 증명할 것이라 맹세했던 '다보여래'가 그 곳 다보

탑 안에 들어 있었다.

 

장려한 불국의 장면, 즉 절대세계의 자세한 모습까지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보여줬다.  심지어 제자들 앞에서 석가모니는 다

보여래의 옆 사좌좌에 않아 보이기도 했다.  이야말로 역사 차

원의 이 시공간에 연출해 보인 궁극적 실재, 즉 절대세계의 돌

연한 출현이고, 궁극적 실재와 역사적 석가모니가 하나임을 보

여준 위대한 기적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는 이런 정보를 시적인 상상력으로 읽어

왔다.  대중 교화를 위한 방편설로.... 즉 추상화 내지 관념화

시켜서 받아들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자재 만현 스

님의 개입이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인견적이면서도 초월적인

부처님 세계의 구체적인 묘사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다.  자재

만현 스님의 불교 세계관을 특징짓는 철두철미한 보신 중심주

의의 등장이다.  무량광으로 된 보신, 절대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보신을 중심축으로 해서 불교 세계를 전면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법신은 비로자나불로 상징되는 빛 그 자체, 진리 그 자체

혹은 우주 그 자체를 말하는 '우주적 몸'.  따라서 보신과는 불

이의 관계인데, 보신은 이 법신을 근거로 해서 나온다.  다

르게 말해 보신은 궁극적 절대계에 존재하는 불신의 구체적인

모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불교학자의 책상머리 발언이 아니고, 독

자적인 수행론과 불교 생사관의 정립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또 만현 스님의 수행 과정과도 긴밀하게 엮여 있다.  그 문제의

보고서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다.

 

때문에 만현 스님은 한국 불교에서 말하는 화두 타파, 즉 견

성을 둘러싼 새로운 해석부터 정면에서 문제 제기하고 있다.

 

흔히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 하지만, 만현 스님은 이를 철두철

미 부정한다.  한 마디로 "위험한 표현"일 뿐이라는 지적이

다.  외려 견성은 기나긴 수행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만현 스님은 자신의 수행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말한다.  즉

화두 타파로 인한 마음자리를 깨치는 순간 하늘과 땅의 경계가

확 뒤집힌다는 것, 바로 이때 "내 앞의 모든 게 공이요,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까지도 사라진" 자성광명을 본다.

 

생각 이전의 본래 진면목이다.  이때 몸뚱이라는 것이 '가짜 옷'

이고, 나라는 것도 '가짜 나'이며 무상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대목부터다.

 

그 견성의 단계가 완전한 깨달음이고, 따라서 생사윤회를 벗

어나 삼계를 완전히 뛰어넘기에는 턱없는 것

이라고..........., 이 대목에서 만현 스님은 논리와 문자에 굳이 매

달리지 않고 화두 타파 뒤 선정에 들었던 상태의 경험을 털어

놓고 있어 주목된다.

 

그에 따르면 선정 속에 몰입했던 때, 한 이불 속에서 심한

문둥병 환자와 함께 밤잠을 자게 되었다.  이런 선정 속 상황에

서도 만현 스님은 문둥이의 존재가 자꾸 의식이 됐다.  또 토굴

에서 보림하던 중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다가올 때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진땀을 흘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우연히 보게

된 미모의 여인을 보고도 마음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의 표현

대로 "(그런 자신이) 역겹고 싫었다."고 한다.  자신의 화두 타파와

선정이 부처님이 말한 진정한 삼매의 경지가 아니었다는 중간

결론을 만현 스님은 그때 내리게 된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란 용광로에 무명 번뇌나 업장 따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지난 날 "나의

법문을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진

여자성을 보았다 해서 곧바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부처님과 보살을 뵙고자 했으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

옥, 천상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도솔정토나 서방극락도 끝내

관할 수 없었습니다.'(26쪽~29쪼 요약)

 

선승인 그가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 전환을 한 것은 그 때

문이다.  이 방향 전환은 두 가지 점에서 놀라운 사건임에 분명

하다.  염불선.  그것은 조사선 일색의 한국 불교에서 오랫동안

외도로 치지도외 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현 스님은 염불선

이 인도의 용수와 마명, 중국의 혜원, 선도와 각현 그리고 한국

의 의상과 원효 스님 또 서산 선사 등의 수행법이기도 했음을

주목하고 "침묵 속의 정토업을 쌓는" 수행을 거듭했다고 밝힌

다.  가히 놀랍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20~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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