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0일 일요일

결론*21세기붓다의 메시지 존평

 

결론

 

 

 필자는 유(儒), 불(佛), 선(仙), 주역(周易), 천부경(天符經)그리고 카발라(Kabbalah), 그노시즘(Gnosticism 영지주의), 타로(Tarot), 신지학(神智學) 등의 각종 신부주의(Occultism)에서부터 스토아 학파,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훗설, 하이데거, 야스퍼스, 샤르트르, 화이트헤드 등 미약하나마 동서고금의 철학, 외계문명 등의 서적 들을 두루 공부하고 나름대로 수행분야의 선지식(善知識)들을 친견해 봤지만 진실로 알곡이 되는 가르침은 그렇게 많이 대면하지 못했다.

 

 책 한 권에서 한 가지 가르침만 증득하여도 그 책은 책의 가치를 다 한 것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붓다를 이루신 대선지식 만현 큰스님과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그 어느 선지식이나 책과는 다르다. 


큰스님의 가르침 하나가 일파만파(一波萬波)확장되어 필자가 알고 있던 가르침을 합종시키고 체계화하였으며 새로운 가르침들을 배태하고 잉태시켰다.

 

 또한 이 진경(眞經)에는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가르침이 현란하고 황홀하게 펼쳐져 있으며 모두 주옥 같은 가르침들이다. 


이런 말하면 안 되지만 정말 남 주기에 아까운 가르침들로 가득 수놓아져 있다. 특히 붓다의 삼실설과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은 그 어느 종교명상 수행서적에서도 대면하기 어려운 지극히 희유한 내용이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희유하고 거룩한 성서(聖書)로서 전대 미문의 미증유 설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불제자들은 만현 큰스님의 대자대비함에 지극한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금세기 한국 불교계 더 나아가 전 세계 불교계에 기여한 만현 큰스님의 업적은 불교의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불제자로서 앞으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제 2부의 탄생을 고대한다. 끝으로 펜을 놓으며 만현 큰스님께서 힘든 사바세계에 오셔서 지극히 심원한 불가(佛家)의 정수를 펼쳐 보이시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오체투지한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p234~235.>>

 

 

 

붓다의 삼심설(三身說)*21세기붓다의메시지 존평

  

 

 

붓다의 삼심설(三身說)

 

 

 한편 큰스님께서는 염불선 뿐만 아니라 붓다의 삼신설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해 설해 주셨다. 붓다의 삼실설은 그동안 승가(僧家)에서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고의 비결(秘訣)이라 할 수있다.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사자후 하신다. “붓다를 이룬이는 법, 보, 화 삼신을 구족해서 평등적인 무아 속 절대세계와 차별적 중생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라 밝힙니다.” 이는 인류 최대의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최근 컴퓨터 시스템은 3계층 구조로 구축되어진다. 3계층은 바로 3단계로 처리(프로세스)가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이 3계층 컴퓨터 시스템은 서양철학에 의하면 플라톤의 이데아( 여기서는 붓다의 삼신)를 모사(模寫)한 시뮬라크로(Simulacra)에 해당한다.

 

 즉, 부처님의 법신을 근간으로 보신이 있고 보신을 배경으로 응화신을 나툰다는 점은 인류 최대의 이기(利器)인 컴퓨터 문명의 핵심 프레임워크(뼈대)로서 3계층 컴퓨터 시스템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어찌 지고한 붓다의 삼신을 현상계의 단지 하나의 미물(微物)인 컴퓨터 시스템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다만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 이데아가 바로 붓다의 삼신이라면 이 이데아를 모사한 시뮬라크르가 바로 3계층 컴퓨터 시스템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강조하는 바 이러한 비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 실재의 복사는 아니다. 다만 불가의 고승(高僧)께서 “삼라만상이 설법을 한다.”는 이치를 올바르게 해득한다면 이 이치가 삼천대천세계의 핵심 메타포(Metaphor)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각설하고 만현 큰스님께서는 삼신설은 인도의 무착, 천친 큰스님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하셨다. 그 다음으로는 <<보성론>>의 삼신을 들 수 있다고 하시며 여기서는 불신, 곧 원만보신은 무량광, 즉 억종광, 백종오색광, 열반광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맞다고 하셨다. 


큰스님께서는 <<금광명최승왕경>> 제 二권 3<분별삼신품>, 용수의 삼신관(三身觀), 인도의 마명과 용수(주저<<대지도론>>) 큰 스님과 몇몇 중관의 논사들 그리고 유가행(瑜伽行)학파 기타 논서(가령 무착<<섭대승론>>, 견해 <<보성론>>)등 붓다의 삼신설과 관련하여 무수히 많은 역대 불가의 최고의 큰스님들과 그 분들의 주저(主著)를 모두 꿰뚫어 보시는 탁월한 안목과 식견을 겸비하셨다는 점에 필자는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큰스님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며 사바세계에 한 분의 붓다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 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이 얼마나 자세한 말씀인가? 큰스님이 자상하게 밝히신 붓다의 삼신설 내용들은 어느 하나하나 경천동지(驚天動地)가 아닌 사자후가 없다.

 

 여기에 큰스님은 연이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심도 있게 정신계를 공부하거나 정신계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구족한 수행자 또는 구도자라면, 물론 그러한 구도자가 지구상에 드물지마는 여타의 종교와 영성세계를 수행한 구도자건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내용이다. 


왜냐하면 서양의 신지학(神智學) 등에서도 모든 수행이 정신계의 스승으로부터 공부를 배워야 진실된 공부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수행자들 간에 회자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큰스님의 말씀을 살펴보자.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니다. 바람과도 같이 이거짓몸뚱이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신(원만보신)은 무아 속 절대세계, 즉 상적광토에 청접법신 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큰스님께서 생사(生死)의 과정(Process)과 흐름 속에서 우리의 영혼체가 어떻게 변전(變傳)하는 지를 여실지견으로 파악하고 계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개의 영체에 대한 설명은 힌두의 수행체계에서 취하신 것이나 원래 근본불교에서 전해져왔는데 어느 순간 누실되었다고 하신다. 이 4개의 영체에 대한 이론은 신지학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 세계에는 불신으로서 원만보신이 그리고 무아 속 절대세계인 상적광토 (연화장세계)에는 청정법신을 둔다는 것은 가히 큰스님이 친히 증험한 붓다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그누가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큰스님께서 하신 다음의 가르침을 해석해 보자. “사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진불(眞佛)입니다. 거래도 없고 머묾도 없습니다.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이요, 평등입니다. 초월적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의 근본이 되어 이미 인격이 아닙니다. 


대우주아입니다. “여기서는 석가모니부처 님의 법신이 우주적인 몸으로서의 법신이며 진불임을 소상하게 밝히셨다.

 

 여기서 우리는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적이고 평등적인 법신과 인격적 실존으로서 보신을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극명한 설명인가? 


어느 누가 붓다의 삼신설에 이렇게 자세하게 증험(證驗)적 차원에서 서술 할 수 있을까? 수행의 진검승부는 바로 고강한 내공으로 얼마나 고난이도의 승탑(僧搭)을 쌓느냐, 즉 자신의 내면에 최고의 경지를 구축하고 완성하느냐에 있다 하겠다.

 

 더 나아가서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밝히신다. “붓다 세계에 계신 불신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의 법신을 둡니다. 그래서 법신은 보신과 화신의 근본체입니다.” 이제 법신과 보신의 관계는 자명해 졌다. 법신이 체라면 보신은 용이며 보신이 체라면 화신은 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가에서 진부하게 거론되고 있던 체용철학(體用哲學)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찬탄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 대한 설명을 큰스님은 보다 간명하고 확실하게 적고 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도 같이 언제나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습니다. 


‘전 우주적인 몸뚱이’가 그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대우주이시며 절대와 동일한 변조 광명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로서 모든 붓다들의 청정법신을 총섭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희유한 사자후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선근을 지닌 모든 불제자라면 부처님에 대한 신심(信心)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고 발심(發心)을 내어 수행정진하게 해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추가로 말씀하신다. “부처님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언제나 온 법계를 두루 비추고 계십니다.”라고. 우리는 왜 시방세계와 삼천대천세계에 부처님이 두루 상주하고 계시는지에 대한 의미를 이제야 보다 실재적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 다음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글을 원용해 본다. “ 그 렇듯 붓다님들은 빛으로 일체처 일체시에 아니 계신 곳 없기 때문에 법신 개념에서 볼 때 천수천안이 문제가 아니며 가고 오고하는 그런 존재도 아닙니다. 


무소종래이며 역무소거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입니다.” 참으로 희유한 가르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구절 ‘ 삼천대천세계 우주 자체가 바로 붓다의 몸’이라는 내용은 붓다의 삼신설의 백미(白眉)요 압권(壓卷)이다. 


이 말씀에는 불제자가 만약 붓다를 이룬다면 진실되고 완벽하게 우주와 계합된 우주대아(宇宙大我)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P228~233>>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21세기메시지 존평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

 

 

 

그렇다면 큰스님께서 어떻게 이러한 지고(至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다름 아닌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念佛禪)에 있다 하겠다.


 큰스님께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일심불란으로 집지명호 할 수만 있다면 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까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信),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願), 그 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불선(行)을 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이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상하게 설파하신 가르침이 아니랴! 큰 스님께서는 단언하시길 염불선 수행을 잘하면 극락정토까지 왕생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얼마나 지복의 법문인가? 그리고 명료하게 신(信), 원(願), 행(行)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계신다. 이러한 요긴한 가르침을 서양의 노하우 – 전승(Knowhow –Lone) 용어를 빌리자면 구도자들에게는 수행팁(Tip 비법또는 비결)이라고 부른다. 고대로부터 구전심수(口傳心授)되어지는 가르침들은 대부분 수행팁에 속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곳곳에 불제자가 수행하는데 필요한 요긴한 수행팁들을 소상히 드러내 놓으셨다. 눈밝고 지혜로운 이라면 이러한 수행팁들을 잘 간파하고 그 의미를 해득할 수 있으리라.


 큰스님의 염불선 수행팁과 가르침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설하신다. “진여실상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실상염불이나 부처님 상호의 공덕장엄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관상염불은 좋습니다. 


그러나 보다 좋은 것은 고성으로 칭명하는 염불입니다.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염불을 권하는 것입니다.”여기 크게 중요하고도 요긴한 수행팁들과 가르침이 있다. 첫째는 실상염불과  관상염불의 차이에 대한 수행팁이다.

 

둘째는 “고성으로 칭명해야 효과적이다.”라는 수행팁이다. 그리고 “염불선은 부처님이 실재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는 가르침이다. 불제자나 구도자가 수행을 할 때 선전이 없고 발전이 없는 것은 수행팁과 요긴한 가르침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 해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큰스님께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설하시는 가르침들에는 그냥 맹목적으로 읽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심장한 구절들이 많이 있다. 다음의 큰스님 말씀을 살펴보자.

 

 “부처님께서는 <<관무량수경>>에서 ‘극락국에 태어나고자 하면 마땅히 부모를 효양하고 스승께 봉사하며, 10선도를 닦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정업의 기본입니다.”


이 말씀에는 극락국에 태어나기 위한 요건이 상술되어 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스승을 잘 모시고, 십선도, 즉 열 가지 선함(살생, 도둑질 ,사음, 망어, 양설, 악구, 기어, 탐욕, 분노 사견을 멀리 여의는 것)을 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실재(Reality)의 양대 축인 이데아적이고 형이상학적 법설과 형이하학적이고 구체적인 가르침을 잘 조화시킨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큰스님의 성서(聖書)<<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불제자가 지향해야 할 뚜렷한 비전(Vision)을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제시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 궁행(實踐躬行)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명료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의 구절은 더욱 실재적이다. “길 잃은 자식이 어머니를 찾듯 간절히 아미타불을 부르며 사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큰 액운도 비켜가고, 죽을 때 잠자듯 편히 갈 수 있으며 최소한 하늘 천상에 날 수 있습니다.”이 말씀의 요체는 간절하고 간절하게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라.”는 가르침이다. 


간절하다는 것은 지극히 부처님을 숭상하고 존재계의 상위존재자들 앞에서 하심(下心)을 지니라는 것이다. 존재계의 윗분들을 존숭함으로서 겸손과 겸허의 미덕을 수양하고 아랫사람들을 사랑하고 포용력을 갖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임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이 얼마나 보편타당하고 진지한 가르침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음의 구절은 정말 지극 정성으로 치열하게 수행하는 불제자들에게 매우 소중한 가르침이 함의되어 있다. “삼매에 든다면 여기서부터 성자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삼매에 들수록,더 깊은 삼매에 들어갈수록 청정이 더해지고 지혜가 증장되며 삼매력이 생겨 죽음을 마음대로 하고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역시 만현 큰스님이 친히 뼈저린 고행정진으로 실증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말씀은 감히 체험에서 우러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무릇 수행자들은 삼매에 대해서 너무 희박하게 알고 있다.


 삼매에 대한 서양 영성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로 단순히 ‘깨어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깨어있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으며 어떤 현상이 전개되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큰스님께서는 삼매라는 주제를 통해서 성자가 되고 청정과 지혜가 더 증장되며 더 나아가 생사에 자유자재하며 윤회를 벗어난다고 하셨다. 


이것이 진실로 삼매의 힘(功 power)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삼매를 얻어야 하며 삼매를 얻으면 어떤 소식을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구도자들에게는 사실 묘연했다.

 

또한 여기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자유자재로 마음 속의 내가 독자적으로 말을 잘 하는 정도가 되면 이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한 점 속을 뚫어 가십시오. 


염불삼매로 들어갑니다.” 이 말씀은 큰스님께서 친히 증험하신 바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염불삼매로 증입해 가는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 한 점 속을 뚫어 가라.”는 가르침이라고 본다.

 

인도의 요가 체계에서는 빈두(Bindu)라는 말이 있다. 빈두란 점(點)이란 뜻이다. 의식이 빈두로 투사되어 빈두가 세계를 현현시킨다는 가르침이 있다. 아마 필자가 알기에 이는 점을 뚫고 지나가면 결국 새로운 세계로서의 삼매에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염불선은 그 이후에도 붓다에 도달하기까지 무수한 단계를 밟아가며 무궁무진(無窮無盡)한 세계로 진입해 나간다고 하신다.

 

한편 큰스님께서는 실제로 염불선 수행을 통해서 수많은 큰 스님들이 배출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다음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원문을 인용해 보자. “인도의 마명, 용수, 무착, 세친, 중국의 혜원, 선도, 천태, 청량, 영명, 신라의 원효, 의상, 서산, 기화, 일본의 법연, 친란 등 대선사들을 포함한 당대의 큰스님들도 염불 수행을 최선의 공부법으로 권장하고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정토업(염불공부)에 매진한 분들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역대 큰스님들을 열거하시면서 실제적으로 염불선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셨다. 


심오한 증험을 통해 붓다의 반열에 오르시고 불교사상과 전세계 수행문화에 박학다식하신 큰스님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염불선이 왜 중요하며 왜 가치가 있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여실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P222~227

 

 

 

2022년 4월 8일 금요일





미증유의 성서로서<<21세기 붓다의 메시지>>

 

- 아! 만현 큰스님, 21세기 불교 수행 문화의 신지평을 여시다 -

 

 

 

 

머리글

금세기 유례 없이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세계 열강의 세력 속에서 국운의 성패와 흥망을 놓고 쟁패(爭覇)를 벌이는 암운(暗雲)의 그림자 아래, 한국의 수많은 영혼들이 긴장하고 방황하고 있다. 


아니 세계적으로 불안과 공포가 끊이지 않으며 종교적 갈등의 골이 심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어떤한 해법의 실마리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명실상부한 최고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에서도 미래에 대한 정확한 방향타를 설정하지 못하는 불제자들이 많이 있다. 


불교 수행자들은 바야흐로 더 절실하고 시급히 구원의 손길을 찾아야 할 때가 도래했다.

 

그 구원의 손길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2500년 전 영상 당시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불세존(佛世尊)의 가르침을 회고하고 되새겨 봐야한다. 


그러나 지금 부처님의 존엄한 말씀과 거룩하신 가르침을 되살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따라서 그 시절 그 장소에서 친히 설하신 가르침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친견해서 들어봐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불제자들로서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불제자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원시불교를 온고지신(溫故知新)하여 바로 21세기에 맞는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적 원형(元型)이요 정수(精髓)를 증득하는 것이다. 


아! 정녕 그 누가 21세기에 맞는 불교의 가르침을 근본불교를 살려서 온고지신하고 일신(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하여 자세히 밝힐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여기에 한 분의 성스러운 큰스님이 계시니 그 분이 바로 자재통왕불이신 만현 큰스님이시다. 


그 거룩하고 희유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지극히 순수한 가르침과 청정한 친설(親說)을 토대로 만현 큰스님께서<<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친술하셨다. 


이 진경(眞經)을 읽어본 이는 알겠지만 그 누가 이토록 읽는 이로 하여금 시종일관 법열(法悅) 속에 있도록 강렬한 어조와 지고한 경지에서 글을 써내려 갈 수 있겠는가?

 

석가모니부처님의 그 위대하신 가르침의 맥을 이어받고 법통(法統)을 이어받은 분이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시다. 


영산 당시의 아난존자께서 다시 와 부처님의 법을 세상에 펴니 그 서막이 바로<<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인 것이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p209~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