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30일 목요일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무량광을 보고 붓다를 이루는 과정

 무량광을 보고 붓다를 이루는 과정

 

 

 

이뿐이랴!  큰스님께서는 더 상세하고 자상하게 무량광을 보고 붓다

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큰스님께서 법회에서 설법하신 바에 의하면 또 하나의 큰 관문은 바

로 육종진동을 맞아야 된다고 하신다.  그래야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지도를 받아 보다 깊은 삼매에 자주 들게 된다고 말씀

하신다.

 

여기서의 가르침은 서양의 신지학에서도 거론되는 이야기이다.

 

즉, 서양의 뉴에이지 문명과 신비주의 학파의 구심축을 이루는 신지학

에서도 수행자가 정신계의 스스로부터 공부를 배워야 수행이

무르익고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큰스님의 법 세계는 이미 서양의 정신 세계의 흐름과 위상을 근원적

인 측면에서 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불교는 전 세계의 모

든 수행 문화의 지조이자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큰스님의 불신사상에 대한 법 세계가 얼마나 원대하고 통합적인지는

다음의 가르침을 보면 잘 해의할 수 있다.  즉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 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니다.  바람과

도 같이 이 거짓몸뚱이에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

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신원만보신은 무아 속 절대세

계, 즉 상적광토에 청정 법신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

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원만

보신의 세계를 밝히신다.

 

신지학에서 에텔체, 아스트럴체, 멘탈체, 코절체로 일컫는 4대 영체

의 존재 의미를 그 어떤 문헌이나 서적보다도 극명하게 설하신다.  즉

4대 영체의 존재 의미는 불신과의 계합을 위해서이며, 4대 영체가 경

험한 모든 인생 도정의 공부 내용이 불신 속으로 녹아든다는 사

실이다.

 

이 얼마나 미증유의 사실이며 심오한 법 세계인가 말이다.  우리의

영혼체는 사바세계를 통해서 리모털(재운명화)의 과정을 겪어가

면서 새로운 배움과 체험을 얻는다.  하지만 그러한 배움과 체험이 죽

음으로써 모두 허망하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 수행자들의 세

계이다.

 

하지만 큰스님의 법문을 잘 해의하면 그렇지 않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즉, 불과를 이루게 되면 배운 내용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바

로 지복의 몸인 원만보신에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휼륭한 가르침이 아닌가 말이다!  이는 정말 가히 큰스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경천동지의 사자후가 아닐 수 없다.

 

하이테거가 이야기한 바처럼 인류의 무수히 많은 역사를 통해서 면

면히 내려오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내적 투쟁을 해왔다.  무엇을 위해서

내적 투쟁을 해왔단 말인가?

 

만약 큰스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불신사상, 즉 붓다의 삼신불에

대해서 알 수도 없고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류가 유구한 역사 이래로 내적 투쟁을 해온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아니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답은 나왔다.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내적 투쟁을 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우주적인 몸을 구현하기 위함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재삼 강조하는 바, 이는 가히 큰스님이 친히 증험한 붓다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어는 누구도 친히 설할 수 있는 법문이 아님을 우리는 명

각해야 할 것이다.

 

 

 

 

 

무량광은 본원광이요, 부처님 광

 

 

다음의 불신에 대한 말씀은 법성으로서의 자성광과

구별하여 무량광을 밝히고 계신다.

 

"불신보신은 '지복의 몸'이라 하겠습니다.  지혜와 복덕을 완전 구족

하기에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리기에그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청정법신 곧 '전우주적인 몸'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경험세계 속에

반영된 몸이 바로 불신입니다.

 

부처님의 몸, 곧 불신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엄청난 광도를

지닌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우주의 근원인 빛(성광)이 아

니라 그것의 본원(엑기스)광이요, 부처님 광입니다."

 

자세히 이 말씀을 해의해 보면 상당히 심원한 가르침들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원만보신은 유시무종으로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린다는 점, 둘째 원만보신은 청정법신의 육화된 형태로 경험 세계에

반영된 몸이라는 점, 셋째 견성이나 깨달음을 얻은 후 드러나는 자성

광이 아니라 자성광의 본원광인 부처님 광이 바로 불신이 발하

는 무량광이라는 점이다.  자성광이 나무의 한 조각 잎파리라고

하면 무량광은 바로 나무의 중심 줄기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며 사바세계에 한 분의 붓다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

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 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항은 첫째, 불신을 얻어야 붓다가 된다

는 사실이다.  기존 선불교에서는 부처는 마음이고 마음이 부처

라고 한다.  그렇게 불교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실추시켰다.  또한 선불교

는 위빠사나 명상, 안반수의(아나파나시띠), 염불선 등 다양한 불교 수행

체계를 외면하고 오로지 간화선으로 불교 수행체계를 정형화시

키고 박제화함으로써 불교의 지고지순한 생명감을 멸실시

키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큰스님께서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분연히 붓을 들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점 큰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둘째,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선근 보따리가 중요함을 여실히 강조하

고 계신다.  수행자가 우주적으로 무한한 선근을 지었을 때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점,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 타당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큰스님이 아니 계셨다면 우리는 이 점을 명료하게 알지는 못

했을 것이다.

 

셋째, 상품상의 보살이 붓다 되기 위한 후보가 된다는 점이다.

 

큰스님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는 하나 수행 비결 내지

수행 요결이 아닌 것이 없다.

 

 

 

 

출처/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53~57쪽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 불신의 존재/ 수행의 요체는 청정한 깊은 세계로 정진해가는 것이다

 불신의 존재

 

 

 

이제 불신사상에 대한 큰스님 법 세계의 실제적인 핵심적

요체를 치밀하게 상술하고자 한다.

 

먼저, 본인은 큰스님의 어마어마한 법 세계와 광명법안의 불

지를 얻지 못한 부족한 경지라 가능한 본인이 아는 한도 내에서

큰스님의 법 세계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글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을 통해서 독자의 내면에 큰스님의 실증적 사상의 금자탑

을 확고히 구축하고 건립하기를 기원한다.

 

불신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사항이 무량광의

존재이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무량광을 보아야 한다고 큰스님께서

는 설하신다.

 

무량광은 부처님의 본원광이며 경계에 오염되지 않고, 영원히 손상

되지 않으며 내외명철이 특징이라고 하신다.  또한 안팎이 수정처럼 드

러나 영롱하기 그지없으며 백종 오색광이요 억종광이

라고 하시며, 동시에 햇빛에 반짝이는 금강석의 빛과 같다고 하신다.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는 붓다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불의 경

계이며, 붓다가 되는 관문이 바로 무량광으로 이를 통해서만 보살에서

붓다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하신다.

 

사실, 무량하다는 것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무량

광은 지극히 신성한 광명을 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

들 중에서 유한하다는 것은 불만족을 표현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괴

로움을 안겨준다.

 

큰스님께서 설하신 무량광은 이 점에서 다르다.  즉, 찬란한 색상들로

황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무량광은 무한을 의미한다.  한계와 벽

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절대적인, 그리고 어디에나 편재하고 주재하는 거룩한 존

재자임을 드러낸다.  다함이 없고 영원하기 때문에 이는 덧없는 사바세

계의 정신과 물질세계를 조월해 있다.

 

그 점에서 무량광으로 구성된 불신은 미래제가 다하도록 말하

지 않는다고 큰스님께서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는 이런 엄청난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정대계, 곧 상적광토인 부처님 나라에 둡니다.  그 분의 불

신이 있다는 것은 곧 그 분이 불과를 증했다는 의미입니다.  불신을 교

계에서는 '원만보신' 또는 '보신'이라고 하거나 '지복의 몸'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불신을 종래의 법신 개념에서 벗어나 보신 개념

으로 과감히 대처하고자 합니다."

 

원만보신이란 불제자가 억겁의 수행을 통해 그 공과가 무르익

어 그 응분의 보답으로 받게 되는 붓다의 광명체라고 본인은 해

석한다.  노력하면 인과응보로 그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이 하나의 우

주적 대섭리이자 삼라만상의 보편 탕당한 이치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와 같이 부처님을 믿고 따라서 지극한 정성으로 큰스님께서 제시

하고 지도하는 바에 따라 칭명염불선을 하면 곧 지극한 청정함에 이르

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칭명염불선을 겁의 세월을 두

고 부단히 수행해 나가면 결국 지극한 청정함에 이르러 무한한 환희체

이자 지고의 희열체인 무량광으로서의 불신을 얻게 된다고 해의

해 본다.

 

중생들은 청정함의 맛을 모르지만 깨달음을 증입해 들어가는 불제가

들은 이를 안다.  여기서 청정함이란 탐 진 치와 같은 독소가 인체에

서 정화되고 수많은 지중한 죄업들이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사

해짐으로써 얻어지는 맑고 깨끗한 상태를 의미한다.

 

수행의 요체는 결국 무엇보다 자신을 청정하게 하여 그 청정한 깊은

세계로 부단히 정진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행의 요체는 청정한 깊은 세계로 정진해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설하신다.

"보살이 남섬부주에 여러 번 생을 받아와 붓다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억겁다생의 업장과 습기, 악연, 빚 그리고 탐 진 치 삼독의 뿌리가

녹아 없어져서 털끝만큼이라도 그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아야 무아 속

절대세계에 자기의 불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보편 타당하고 온전한 해석이 아니랴! 진실로 수행을 해

본 불제자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존재하는 탁한 기운과 습, 그리고 착

등을 제거하고 탐 진 치 삼독을 뿌리뽑는 것을 수행의 기본으로 인

식하게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불제자에게 있어서 수행이란 청정

하여 지극한 청정에 이르는데 있다.  이는 큰스님께서 누차 말씀하신

바이다.

 

그렇다면 청정해 지면 어떤 증험적 결과를 얻게 되는 지를 알 필요

가 있다.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증한 이는 자기의 거짓 몸뚱이 속 네

개의 영체가 모두 빛덩어리가 되어서 자기 불신과 계합합니다."라고 설

하신다.

 

우선, 불제자가 수행을 지극 정성으로 하면 영체가 빛처럼 밝아지고

더 나아가 불과를 이루면 빛덩어리 자체가 된다는 점이다.  청정의 극

치라고 할 수 있다.  견성, 즉 깨달음을 증득하여 보림 후 아라한을 얻

으면 내면세계가 밝은 은백색으로 빛난다.

 

큰스님 말씀대로 아라한은 영체 색상이 은백색을 띤다.  하물며 아라

한이 이런 정도인데 감히 불과를 증하신 분의 4대 영체가 어떠한 지는

증험하지 않고서는 상상 불허이자 상상 초월이라 하겠다.

 

여기에 추가로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이룬 이는 이 몸뚱이와 4개의

영혼체 외에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 절대계에 하나 더 가지게 됩니다.

 

불신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색상이 단엄한 적멸상입니다.  교계에서

'원만보신'이라 이르는 '지복의 몸'입니다."라고 설하신다.

 

육바라밀, 특히 계율을 선지하고 선근 공덕을 우주적으로 무한

히 짓고 두타행과 보살행을 하여 무아를 더 심화시켜 나가고 보현행원

을 통해서 지극한 청정에 이르게 되면 청정체로서의 몸을 연화

장 세계에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붓다의 몸, 즉 불신으로서 원만보신인 것이다.  큰

스님께서는 이러한 청정한 몸으로서의 불신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밝히셨다.

 

"오온이 녹아 억겁의 업장이 다하고 탐 진 치 등 번뇌의 뿌리가

온전히 뽑혀지고, 다생의 습이 녹고, 천만 생 동안 익힌 악기가 소멸

되고, 악연이 단절되고, 전생의 빚이 다 청산되어서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들의 위신력으로 불과를 증한 이는 붓다들의 세계에 저 태양 속의

눈이 시리도록 밝은 빛과도 비교가 안 되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자기

불신을 얻게 됩니다."

 

타종교 명상수행 체계의 선지식과 서적들 어디를 봐도 무량광

에 대한 기술은 일말의 언급도 없다.  또 일반 종교와 명상수행 체계에

서는 수행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방황하는 수행자들에게 명료하

게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수행 문화의 현주소이다.

 

큰스님게서는 앞서 원용한 글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억겁의 업장,

탐 진 치의 번뇌, 습, 기, 악연(원결), 빚의 청산 등을 하나하나 조목

조목 밝히고 궁극적으로 무량광으로서의 원만보신을 증득하는

것을 수행자의 목표라고 밝히고 계신다.  이 얼마나 지고한 가르침

인가 말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고원하여 다수의 수행자들이나 미혹

한 구도자들은 믿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고차원적이고 지고의 경지를

설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미혹한 구도자들에게는 믿음이 서지 않

는 것이리라.  하지만 올바른 깨달음을 증입해 나가는 불제자나 전생에

선근 공덕이 많은 선남자 선여인이라면 분명 큰스님의 가르침에 깊은

신심을 낼 것이리라.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