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9일 일요일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만 보살신과 불과를 이룬다/ 불신의 존재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만 보살신과 불과를 이룬다

 

 

 

 

국내 그리고 해외의 쿤달리니 서적들을 살펴보면 깨달음의 빛에 대

해 많이 언급한다.  그리고 대부분 연단술이나 연금술의

일환으로서 육체의 힘을 통해서 의식을 각성시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티벳의 밀라레빠 성자도 자신의 인체 내에서 쿤달리니 폭발을 이룬

수행자라고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병행된 불교 공구 없이 단

지 쿤달리니 폭발만으로는 결코 보살급을 이룬다고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쿤달리니를 통해서 7개의 차크라를 모두 없애고 공에 계합

시키면 아라한과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큰스님

말씀대로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극락

정토에 완벽한 보살신을 이루고 불과를 증위하여 연화장 세계의

불신을 증득하는 것은 요원한 일인 것이다.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이 이러한 큰스님의 불신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서는 다양한 동서양 수행 체계에 대한 통합된 사유를 얻어야 한다.  필

자는 미약하나마 여러 종류의 수행법을 조금씩이나마 수련해봤기 때문

에 여기에 소상히 밝혀가면서 큰스님의 불신사상이 얼마나 위대한지

직 간접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지성인이나 학자들은 멘탈체를 각성시키고

계발하여 사실과 생각들로 직조된 지식의 체계를 통해 인류정신의

다양성을 섭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의식적 풍요로움과 기쁨을

누린다.

 

이것은 멘탈체(큰스님의 말씀대로 하면 제2 영체)의 각성을 의미하지 인간

본체인 코잘체(예지체, 1번 영체)의 각성과는 거리가 있다.  코잘체를 각성

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식의 순수성, 즉 마음의 정화가 요구된다.

 

물론 견성, 보살과, 불과 증위를 위해서는 큰스님의 칭명염불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한다.  칭명염불선을 수행해 가면서 차

차로 의식의 정화와 마음의 개오를 얻기 때문이다.  물론 코잘체의 정

화와 이를 통해서 불신을 증득하는 것은 거리가 있다는 점을 수

행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칭명염불선을 통해 의식의 정화와 마음의 개오를 얻는다

 

 

여기서부터는 유체 이탈, 루시드 드림 그리고 아스트럴 프로젝션 등

과 같은 저차원 수준에서 몸밖으로 의식이 출입하는 수행 이론을 살피

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신비적 경험은 큰스님이 설파하신 불신 개념에 비

교하면 초등학교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초보적인 신비체험

은 불신의 존재를 이해하는데 여러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비 체험에 대한 총체적이고 전체적인 이해 없이 큰스님의 위대한

불신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 속의 공중누각과 같으며 허

공에 그림을 그려보려는 것이다.  공허한 망상에 지니지 않으며 실재적

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또한 이렇게 말로서 설명되는 내용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큰스님의 위대한 불신사상과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과 가

피를 이해하려면 이 단계를 잘 밟아나가야 한다.  구구단을 모르고서

어찌 미적분을 풀 수 있겠는가?

 

큰스님의 불신사상에 의하면 지복의 몸으로서 보신과 우주적인 몸으

로서 법신이 있는데 큰스님과 같이 불과를 이루신 대성자의 말

씀이 아니고는 체험이 없이 이들이 있다 없다 떠드는 것은 큰스님 말

씀처럼 한낮 범부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우선 유체 이탈에 대해서 살펴보자.  사실 여기서 말하는 유체라는

것은 에텔체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신

비 체험자와 수행자 그리고 영성 전문가들에 의하면 유체라는 것이 인

체에 별도로 존재하여 잠을 잘 때 분리되어 흐른다고 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유체와 에텔체가 다르다거나 같다고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왜냐

하면 실재로 경험해 보면 이것이 바로 유체 이탈이라는 것을 알기 때

문이다.  여기서는 직접 경험한 유체 이탈 내용을 아는 한도로 자세히

밝히고자 한다.

 

10여 년 전 외도 수련으로서 단전호흡을 하던 당시, 우연히 잠

을 자게 되었다.  단전호흡을 해 본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처럼 호흡수

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잠을 잘 때도 호흡수련이 행해진다.

 

그 유체 이탈이  일어날 당시 잠이 든 수면상태 동안에도 무의식 중

에 호흡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탁한 에텔체가 몸에서 분

리되어 몸으로부터 1m 이상 올라가서 호흡을 하는 것이 아닌가!

 

몸에서 외부로 의식이 빠져나와 몸 밖에서 의식이 호흡을 하는 것이

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부처님께서는 도는 호흡의 한 순간에 있다고

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가 새삼 생각난다.  즉, 몸은 큰스님 말씀대로

매미의 허물이나 다름이 없다.

 

진짜 매미 몸은 우리의 영체인 의식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에텔체의

의식의 허공 중에 깨어있어 주변 상황을 모두 인식하였다.  그래서 밖

에서 소리가 나도 그것을 일일이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정화되지 않

은 상태의 에텔체 의식이라서 그런지 매우 탁하고 안 좋은 의식체임은

분명했다.

 

이러한 유체 이탈의 경험을 통해서 호흡과 의식의 관계를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몸 밖에 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경험한 유체 이탈은 새로운 세계를 꿇고 여행하는 신비 체

험이었다.  이러한 신비 체험은 비록 초보적인 경험이었지만 몸의 덧없

음이랄까 그러한 몸의 한계를 많이 느끼게 해 주었다.

 

여기까지 우리는 유체 이탈의 실상을 알아보았다.  부족한 내용이지

만 대강 유체 이탈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소개하였다



 

 불신의 존재

 

 

 

이제 불신사상에 대한 큰스님 법 세계의 실제적인 핵심적

요체를 치밀하게 상술하고자 한다.

 

먼저, 본인은 큰스님의 어마어마한 법 세계와 광명법안의 불

지를 얻지 못한 부족한 경지라 가능한 본인이 아는 한도 내에서

큰스님의 법 세계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글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을 통해서 독자의 내면에 큰스님의 실증적 사상의 금자탑

을 확고히 구축하고 건립하기를 기원한다.

 

불신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사항이 무량광의

존재이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무량광을 보아야 한다고 큰스님께서

는 설하신다.

 

무량광은 부처님의 본원광이며 경계에 오염되지 않고, 영원히 손상

되지 않으며 내외명철이 특징이라고 하신다.  또한 안팎이 수정처럼 드

러나 영롱하기 그지없으며 백종 오색광이요 억종광이

라고 하시며, 동시에 햇빛에 반짝이는 금강석의 빛과 같다고 하신다.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는 붓다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불의 경

계이며, 붓다가 되는 관문이 바로 무량광으로 이를 통해서만 보살에서

붓다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하신다.

 

사실, 무량하다는 것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무량

광은 지극히 신성한 광명을 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

들 중에서 유한하다는 것은 불만족을 표현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괴

로움을 안겨준다.

 

큰스님께서 설하신 무량광은 이 점에서 다르다.  즉, 찬란한 색상들로

황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무량광은 무한을 의미한다.  한계와 벽

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절대적인, 그리고 어디에나 편재하고 주재하는 거룩한 존

재자임을 드러낸다.  다함이 없고 영원하기 때문에 이는 덧없는 사바세

계의 정신과 물질세계를 조월해 있다.

 

그 점에서 무량광으로 구성된 불신은 미래제가 다하도록 말하

지 않는다고 큰스님께서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는 이런 엄청난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정대계, 곧 상적광토인 부처님 나라에 둡니다.  그 분의 불

신이 있다는 것은 곧 그 분이 불과를 증했다는 의미입니다.  불신을 교

계에서는 '원만보신' 또는 '보신'이라고 하거나 '지복의 몸'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불신을 종래의 법신 개념에서 벗어나 보신 개념

으로 과감히 대처하고자 합니다."

 

원만보신이란 불제자가 억겁의 수행을 통해 그 공과가 무르익

어 그 응분의 보답으로 받게 되는 붓다의 광명체라고 본인은 해

석한다.  노력하면 인과응보로 그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이 하나의 우

주적 대섭리이자 삼라만상의 보편 탕당한 이치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와 같이 부처님을 믿고 따라서 지극한 정성으로 큰스님께서 제시

하고 지도하는 바에 따라 칭명염불선을 하면 곧 지극한 청정함에 이르

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칭명염불선을 겁의 세월을 두

고 부단히 수행해 나가면 결국 지극한 청정함에 이르러 무한한 환희체

이자 지고의 희열체인 무량광으로서의 불신을 얻게 된다고 해의

해 본다.

 

중생들은 청정함의 맛을 모르지만 깨달음을 증입해 들어가는 불제가

들은 이를 안다.  여기서 청정함이란 탐 진 치와 같은 독소가 인체에

서 정화되고 수많은 지중한 죄업들이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사

해짐으로써 얻어지는 맑고 깨끗한 상태를 의미한다.

 

수행의 요체는 결국 무엇보다 자신을 청정하게 하여 그 청정한 깊은

세계로 부단히 정진해 들어가는 것이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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