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9일 일요일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현 불교계에 공헌하는 창도적 법문/불신의 존재와 그 위신력

 현 불교계에 공헌하는 창도적 법문

 

 

 

또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

명 번뇌가 억겁의 죄장 따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지난 날의 나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

습니다."

 

견성 후 보림을 마쳐 아라한과를 제대로 증위하면 상당 부분 번뇌와

과거의 죄업은 사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만현 큰스님 말씀대로

그것으로 모든 번뇌와 억겁의 죄장이 뿌리뽑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행자들은 알아야 한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시종일관 역점을 두어 억겁동안 쌓아온

습, 착, 기, 악연, 빚, 죄 등을 씻어나가는 과정과 방법에 대해서 서술

하고 있다.  이는 또한 만현 큰스님께서 현 불교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

는 창도적인 법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견성으로 모든 수행의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현 큰스님께서는 이 점을 수행자에게 간곡

히 말씀하기 위해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수 페이지를 할애해서

자상하게 서술하고 계신다.  이 얼마나 후학들을 위한 큰스님의 자상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큰스님의 진정어린 충고와 조언을 우리는 재사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큰스님께서 직접 몸으로 증득하

신 수행의 방법과 과정, 또 깨달음에 대해 세밀하고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큰스님의 치열하고 뼈저린 각고의 고행 정진이 없었더라면 우리

는 감히 이 어마어마한 석가모니부처님의 지고하고도 거룩한 법 세계

와 불보살님의 장엄한 불국토에 대해 전해 듣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중생과 수행자를 위해서 세속적 즐거움을 모두 희생하

신 거룩한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을 아무리 찬탄 공경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두 큰스님을 극진히 봉공하는 것이 불제자의 도리이며, 우리 모

두는 큰스님의 뜻에 따라 정법 구현의 길을 여는데 힘을 모아 나가야

하겠다.  이에 두 분 큰스님의 출세의 뜻을 기리고자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한 영산불교 현지궁의 불교사상, 즉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의 법 세계에 대한 찬을 올리는 것이다.

 

끝으로 석가모니부처님과 삼천대천세계의 불보살님들, 그리고 두 분

큰스님의 광명 정대한 법 세계가 세세생생 억조창생의 미래에 전도양

양한 비전을 드리우고 선양하길 간절히 염원한다.

 





 

 불신의 존재와 그 위신력

 

 

 

부처님께 귀의, 귀명, 참회, 발원하라

삼신설 - 불신관

 

 

불신관, 진정한 삼신설은 불교 역사 이후부처님 이후, 21C 해

동 대한민국의 광명 만덕 자재 만현 두 큰스님에 의해 정립되었다.

성중성이신 붓다의 법위는 가히 무상무등등이니

경천동지요, 파천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불교 - 고귀한 문화 창도의 중심축

 

불교는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창시하신 이래, 우주적

종교로서 이해되어 왔으며 찬란한 인류 문명의 꽃을 피우고 고귀한 문

화를 창도하는데 중심축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사실, 오늘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와 문명이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진실로 불교가 우주적 종교로서 현대의 구도자들에게 인식되

려면 견성이라는 한낮 낮은 깨달음의 수준을 초극하여 구도

자의 의식을 우주적으로 확장 및 비상시켜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견성이라는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20세기의 대문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동양종교와 동양신비주

의사상에 심취했던 헤르만 해세는 데미안이라는 문학작품에서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이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오

늘날의 영적 구도자에게 제시한다.  즉, 한 마리의 새와

같은 우리 구도자들은 자신의 아상을 탈피하고 아집을 타파

하기 위해 끊임없는 내적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으로는 우리가 투쟁하는 세계는 바로 기존의 구습이며 잔재인 동시에

또한 암울하고 음침한 외도와 마구니의 세력이라 할 수 있다.

 

구도자는 아상과 아집을 타파하는 내적 투쟁을 해야 한다

 

오늘날의 구도자들, 특히 불제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한계와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너무나 케케묵은 선

불교 구습의 잔재인 견성 일변도의 구도관이 불교의 주춧돌을

무참히 침식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금세기 천문학에서는 우주 문명을, 영성 세계와 SF소설 및 영화에서

는 외계 문명을 이야기하며 첨단 물리학에서는 우주론을 거

론하고 있다.  바야흐로 종교 자체가 우주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

에 왔다.

 

우리는 빨리 헤세가 말한 바와 같이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알은

우리의 사상의 한계이자 벽이다.  이 한계와 벽을 타파하고 나와야 한

다.  또한 알이라는 관념적 세계와 무지의 세계 그리고 삼독심에

가려진 병폐의 막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리고 알은 수행자에게는 견성 이전의 중생심의 세계가 될 수 있음

은 물론이거니와 견성 이후의 아라한이라는 할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알을 끊임없이 타파해나가야 한다.  알을 깨면 또 다른 커다란

알이 있고, 그 알을 깨면 또 다시 커다란 알이 있는 식이다.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고 유력한 플리처상을 수상한

역작 <<괴텔,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노끈>>에서 호프스테더는 지성

적 성찰로서 깨달음을 넘어선 깨달음, 즉 메타적인 깨달음을 거론한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도처의 지혜로운 이들의 이야기에 진실한 마음으

로 귀 기울여야 한다.

 

아! 그러나 지혜로운 이들도 실재적으로는 자신의 의식을 우주적으

로 확장시키거나 증험하지는 못했으니,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그 누

구로부터 불교의 광오한 우주적 법 세계와 웅대한 증험적 담론세

게를 대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불제자들은 어떤 식으로 선불교 일변도의 수행

문화 한계를 극복하고 범세계적이고 우주적인 다르마를 전해들을

수 있을까?

 

그 응답의 메아리를 듣기 위해서는 바로 해동의 거룩한 성지

영산불교 현지궁에 거하시는 대성자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을 친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위대하신 불교계의 두 큰스님을 친견하는데 주저하거나

어려움이 있다면 우선 그 분들의 정신세계를 극명하게 농축시킨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정독해야 할 것이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30~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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