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9일 일요일

깨달음을 넘어붓다까지/ 오늘날 불교학의 한계성/ 영성 수행 문화의 기초적 수행세계

 오늘날 불교학의 한계성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전대미문의 성서로서 불신의 존재

와 부처님의 위신력, 그리고 가피에 대해서 그 어떤 불교서적보다도

명료하게 설파하고 있다.

 

물론 이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가르침들에 대한 총체적

이고도 전명적인 해득과 대의 파악, 그리고 가장 희유하고 거룩한

증험적 사상인 불신의 존재를 올바르게 해의하기 위해서는 구도

자, 수행자 그리고 불제자 모두가 나름대로 동서양 신비체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선결 및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초보적이지만 유체 이탈, 루시드드림(자각몽), 아스트럴

투사(Astral Projection), 대쿤달리니(Maha Kundalini)를 통해서 미약하나마

영혼체(영체)가 몸밖의 외계로 출입하는 경험을 해보면 큰스님의 보살신

이나 불신사상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에텔체, 아스트럴체, 멘탈체, 코절체 등 4대 영혼체 또는 줄

여서 4대 영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 동서고금의 수행에 대한 공고하고도 체계적인 이론

정립 및 확립이 무엇보다 절실히 우리 불제자에게 요구된다.

 

21세기 영성세계는 실전과 실증을 증시하는 시대로 다가서고 있다.

 

말로서만 깨달음을 논하는 것은 시대에 뒤진 발상이요 행위하고 할 수

있다.  특히 선불교의 선문답은 시대 정신에 뒤떨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21세기 신인류 영성 문화의 개벽을 맞이하는 여명의 시대에 우

리는 사변적 이해나 메마른 지식으로서의 사색이 아니라 실제 몸소 경

험을 통해 수행을 증득해야 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유체 이탈, 루시드 드림(자각몽), 아스

트럴 투사, 대쿤달리니로서는 큰스님의 대사상인 붓다의 삼신설

즉 불신이라는 어마어마한 실증적인 개념을 완벽하게 이

해하고 소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하겠다.  다만

이러한 타종교의 신비체험을 통해서 희미하게 알던 시각에서 불신

사상을 좀 더 가깝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진실된 수행자는 수행에 의한 실질적인 증험뿐

만 아니라 수행 이론에 있어서도 확고한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고대

의 고명한 현자들이 제자들을 통해서 구전 심수로 전승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경전과 수행 이론을 많이 읽고 들으며, 실제 증험적

경지를 사유해 봄으로써 다소간의 의식의 각성과 법열을 체험할

수 있다고 전한다.

 

큰스님의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번 봉독함으로써 그것의 존재 실상을

보다 가깝게 이해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구

도자의 자세라 하겠다.  또한 모든 공부는 단계가 있는 법이다.

 

외도의 수행이지만 쿤달리니, 소주천, 대주천의 실력만으로는

외도 최고의 수행법으로 알려진 도가의 양신을 논할 수

없다고 하였다.

 

양신은 빛의 몸으로서 체외 신, 즉 '몸 밖의 몸'으로 허공

신이라 알려져 있다.  자신의 의식과는 분리된 독립적인 에너지

체가 빛으로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 정도의 경지에 이

르러야 큰스님께서 설하시는 불가의 불신의 경지를 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양신이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영원하다고 이야기하는 사

실을 본인은 지금까지 그 어떤 서적들과 그 어떤 선지식들로부터도 보

거나 듣지 못했다.  반면 양신을 얻어 신선이 되어도 언젠가는 사

멸된다고 도가의 선지식으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신선들은 죽을 때 우주적 허망감을 안고 사멸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도가의 양신은 불가의 불신이나 보살신을 구

성하는 에너지체와 완전히 차원이 다르며 열등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

신은 큰스님께서 사자후하신 붓다의 몸, 즉 불신의 광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녕 불가(현지사)의 불신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가

히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이야

기를 신심이 부족하고 선근이 부족한 신도들 그리고 미혹한 중생

들이 들으니 이해는 고사하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외면하며 급기야

비방하기까지 한다.  물론 현지사 신도님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신도님을 말한다.

 

 

 

 영성 수행 문화의 기초적 수행세계

 

 

여기서는 다양한 동서 고금 영성 수행 문화의 기초적인 수

행 세계를 알아봄으로써 이러한 잡음과 불협화음을 잠재우고자 시도해

본다.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영혼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일반적으

로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은 의식의 다변화와 양태에 깊고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즉, 의식의 다양성을 통해서 기

존 의식을 토대로 새로운 의식을 얻아가고 새로운 의식을 통해서 깨우

침, 즉 작은 각성을 얻는다.

 

상념을 조작하고 구상하고 해체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상념들의 구조

와 얼개를 통해서 상념의 체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상념

조작과 가공을 통해 얻는 순간순간의 기쁨이 바로 학자들이나 지성인

들의 기쁨이다.

 

이를 소위 수행 문화에서는 소쿤달리니 현상을 통한 의식의 각성

이라고 한다.  쿤달리니는 영어로 인체의 꼬리뼈 부근에 담재된

순수한 에너지체, 측 샥티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두뇌에 위치한 쉬바 에너지와 합일을 통해 의식

으로서의 힘, 쉬바 샥티를 잉태하게 한다.

 

정설에 의하면 쉬바와 샥티가 결합된 힘으로서의 의식, 쉬바-샥티가

쿤달리니인 것이다.  쉬바는 의식의 고용한 정성이며, 샥티는 의식

의 역동적인 동성을 의미한다.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은 쿤달리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쿤달리니를

통해서 자신의 멘탈체를 발달시키고 계발하면서 동시에 작

은 깨우침들과 희열을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지성적 세계만을 지나

치게 고집 및 고수하명 결국 영혼의 개화와 마음의 개오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명각해야 한다.

 

더욱이 사변적 지성만으로는 큰스님의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성을 관장하

는 멘탈체를 넘어서 예지체라 불리는 코잘체를 계발하면

어렴풋이나마 보다 진지하게 큰스님의 불신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물

론 이것도 상념에 의한 이해일 뿐이다.  하지만 보다 가깝데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진일보가 아닐 수 없다.

 

코잘체, 즉 1번 영체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큰스님의 불신사상을 사변적으로나마 이해하기 위해

서는 의식의 순수성을 무엇보다 빠르게 증득해야 한다.  즉 밝고 명료

한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성인들이나 학자들은 신비주의를 미신으로 취급하거나 불

필요한 행태로 치부하고 있다.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이 좀 더 예지체를

계발시키고 향상시켜 나간다면 분명 의식의 다변화와 양태를 증득하는

데 치우치지 않고 의식의 순수성과 명료성, 그리고 의식의 청정함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지성인들과 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지식으로서의 앎과 그것으로부

터 얻어지는 지혜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혜는 성질상 마른 지혜일 수

밖에 없다.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쿤달리니를 통해 의식의 각성을 얻고 천재성을 발현하게 되

는 것도 실제 몸 속으로 쿤달리니가 타고 흘러 나디

라고 하는 기경팔맥을 소통시키고 타통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 천재 중의 천재인 대석학들은 거의가 쿤달리니 각성을 통해서 완

성된다.

 

이러한 실제적인 쿤달리니 증험을 얻지 않은 상태에서의 학문 탐구

는 거시적이고 올바른 지혜를 잉태하지 못함을 우리는 명지해야

한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36~38쪽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