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7일 일요일

공사상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공사상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밝힌 법신 개념은 공(空)사상

의 연속성 속에서 찾아야 된다고 봅니다.

 

많은 선 불교 스님들께서 큰스님의 가르침이 공사상을 위배하는 것이라 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공(空)사상에서 엄청난 정도의 진보된 상태가 바로 법신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견성(見性)을 하게 되면 공(空)사상을 이해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법신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은 바로 불과를 중해야 얻는다고

큰스님께서 저서에 말씀하고 계시고 있고 <<금광명경>>에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 불교의 공(空)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설파하신 가르침이지

공(空)사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명료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공(空)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세계를 공허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구도자의 몸과 정신 속의 에너지를 청정한 빛의 에너지로 채워야 합니다.

 

큰스님 말씀대로 아라한을 증위하기 위해서는 은광색의 빛이 두뇌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빛의 에너지가 바로 인도의 수행 체계에서 말하는

쉬바-샥티(Shiva-Shakti)이며, 그 빛의 에너지를 통해서 공성(空性)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는 부처님의 공사상과 노자의 현묘(玄妙)사상이

결합된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도자가 자신의 심신을 쇄신하여 깨끗하고 맑고 명료한 의식을 얻어

자신의 존재성에 빛(말하는 아유대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서 인 소프 오르)이

스며들고 세계의 공(空)함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세계는 그대로 여여한

모습으로 우리의 지혜의 눈에 드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마음을 닦고 비우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불가(佛家)에서

전하는 중생심으로서 삿된 에너지 또는 성욕의 에너지로 알려진 나쁜 업의

에너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가(禪家) 또는 외도들의 가르침에서는 깨달음은 감추어진 나를

찾는다고 하는데 이보다도 큰스님 말씀처럼 삿된 기운을 모두 제거해내면

자연스럽게 경계가 뒤집혀 공(空)이 현전한다는 것이 보다 더 확실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즉 내면이 허공을 삼키고 뒤집혀져서 청정심이 나오게 되면 깨달음을

증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큰스님의 자상하신 설명은 현대의 종교 명상서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매우 진귀한 가르침이요 실증적 경험담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청정심이 뒤집혀 나와도 약간이라도 계율을 어기거나

믿음이 약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복귀됩니다.


이를 공(空)이 깨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공(空)을 얻었다가 잃었다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공(空)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空)을 단박에 증오하는 경우는 극히 어렵습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공(空)을 얻어 아라한이 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큰스님 말씀대로 보살위를 얻어 더 나아가 불과를 중위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삿된 에너지와 탁한

에너지를 완전히 제거하여 인간의 눈으로 인식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빛의 청정한 몸을 절대세계에 얻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수행은 공(空)을 얻는데

목표를 두어서는 안되고 <<화엄경(華嚴經)>>의 선재동자처럼 끊임없는

구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해 누차

역설하시고 계시다는 점을 우리는 명각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불교의 과학적 사유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불교의 과학적 사유

 

큰스님께서는 불교 세계관에 대해서 최첨단을 걸으시는 분이

라고 생각합니다.  큰스님의 법문에서 "물은 수소원자 2개와 산

소원자 1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듯 모든 물질은 동일 원자

집합으로 되어있다고 소립자 물리학에서는 말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원소는 핵과 전자로 되어있고 이 핵은 핵자로 되

었습니다.  핵자는 중성자와 양성자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소립자

라 합니다.    


소립자는 쿼크로 이루어지고 이 쿼크는 서부쿼크로

더 들어가면 코스몬으로 이루어졌음을 압니다.  이 코스몬 보다

더 작은 입자를 최종 입자라 합니다.   


이 최종 입자를 지나면 공입니다. 

 이 공의 자리가 아라한의 자리입니다.  윤회를 벗어난

자리인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가히 큰스님께서 불교를 과학적

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얼마나 확연하게 불교 세계를 통시(通視)

하고 계시는가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한편, 큰스님께서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2500년 전에 입자에

대해서 논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부처님께서 "<<능엄경>>이나

<<구사학>>을 보면 격유진(창문에 앉아 있는 먼지 입자)이라 하고,

이 격유진을 뚫어 가면 갈수록 가늘고 세밀해재는데 이를 보면

우모진(소털 위에 앉은 먼지 입자), 양모진(염소털 위에 앉은 먼지 입자),

토모진(토끼털 위에 앉은 먼지 입자), 수진(물을 뚫을 수 있는 입자), 금

진(금을 뚫을 수 있는 입자), 미진, 극미진, 인허진, 공"과 같이 설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스님은 결국 입자에서 알수 있듯 만물은 혼자일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상호 의지관계를 가지고 더불어 살고 있고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스님의 법문에 담긴 치밀한 과학적 사유는 21세기 신인류

영상문화에 있어서 불교의 대대적 흥성(興成)을 기약하는 위대한

법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를 단순히 과학적 차원에만 국한하여 바라봐도 안되지만 과학을 

통해서도 불교를 이해하는 지견과 식견을 두루 갖추는 길은 큰스님께서 

향도하시는 불보.살님의 장엄(莊嚴)한 세계를 향해 정진하는 불제자의 

도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염불선 / 붓다의메시지 존평

 염불선

  

 

 

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강조하는 바, 삼란만상은

설법하고 있다고 어는 고승께서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든

곳곳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의을 기

울이고 자각을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러셀이 이야기한대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인식론은 양자역학의 이론과도 매칭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존재의 실상이란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올 때 가치

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도 몇 해 전 열반하신 숭산 스님이 말씀하

신 것처럼 우리가 사과를 깨물어 먹듯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

렇게 맛을 본적이 없는 진리란 단순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

다.  큰스님의 칭명염불은 이 점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실제로 현지사의 많은 신도님들이 부처님의 방광을 본

적이 있으며 머릿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는 칭명염불의 위력이 일반 수행자가 몇 년 동안 공부하는

양보다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

으로 증득될 때 마음의 개오와 의식의 정화 그리고 정신의 각

성이 일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내면의 진리를 발

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큰스님은 현성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경건하고 독실한 불제자들이 각골쇄신해 온 큰스님의 삶이

여과 없이 스며들어 있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면 큰스님께서 얼마나 뼈저린 삶과 진지하고 심오한

마음으로 구도 여정을 펼쳐 오셨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큰스님의 구도 여정을 완숙한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

던 것이 바로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은 만트라(진언)와 같은 효과가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보

호해 줍니다.  또한 염불을 통해서 발성하는 말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이라는 발성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기 대문에 오래할 수록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습

니다.  사양에서는 로고스라고 하여 신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염불도 석가모니부처님의 마음과 링크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많이 염송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체에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은 파장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칭몀염불을 많이 한 어는 수행자는 자신의 내

면에 부처님의 황금빛 화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한다고 합

니다.

 

재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점은 바로 염불선이 큰스님의

법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큰

스님께서 염불선, 특히 칭명염불을 강조하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부처님게서 실재하신 다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수

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시기에 우리는

그 붓다님들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붓다님들을 진심으로 간절하게 찾을 때 우리는 붓다님들의 가피을 

입을 수 있고 궁극으로는 붓다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한 특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붓다 중의 붓다이시기에 그 분

의 능력은 실로 창조주격이십니다.  바다를 건널 때 수영으로

건너는 것 보다 배를 타고 건너는, 즉 타력에 의한다면 훨씬

빠르게 수행의 목적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염불선으로 희귀함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셨

습니다.  한편 저는 여러 선지시을 만나고 다양한 책들을 접하

면서 모종의 정합적 이해를 얻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혼돈이 있

었습니다.  그러한 혼돈은 바로 방황을 희미하여 급기야 정신적

공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많은 구도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 것은 

바로 확고한 방향을 제시할 뚜렷한 경지에 이른 선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불경을 통해서 염불선을 

수행해야 할 당위성을 얻으셨고 결국 수행 정진에 매진하시고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시고 불과를 

얻으시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는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긋는 그리고 불교계의

잃어버린 얼을 되살리는 대업을 이루신 일이라 생각합니다.  큰

스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말입니다.

 

여하튼 큰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사자후를 남기셨습니

다.  즉, 염불선을 수행함으로써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음을

사자후하시는 동시에 실제로 몸소 불과를 증득하셨습니다. 


 일체을 의심하면 모든 법이 다 허무해 보이고 실없어 보입니다.  

러므로 너무 의심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수행에

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도

큰스님게서는 화엄경의 주옥같은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믿음이

모든 공덕을 짓는 어머니'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불전의 부처

님 말씀이나 공부가 깊은 큰스님의 법문 말씀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도를 이루는 근원이 됩니다.  지옥에 갈

종자는 진짜 큰스님의 말씀도 믿질 않습니다.  


삼악도의 종자는

의심만합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불제자에게 신심을 내

야함을 당부하셨습니다.  믿음을 수행터로 삼아 극락 왕생과 붓

다증위를 위해 전심전력하여 염불선, 즉 칭명염불에 정진하면

우리 불제자들 모두가 큰스님의 말씀처럼 석가모니부처님의 위

신력과 가피를 받아 부단한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2022년 3월 23일 수요일

붓다의 메시지 존평 / 주망. 업. 두타행

 주망

 

 

 

불제자는 자신의 환경을 통해서 자신을 일신하고 쇄신해 나

갑니다.  그러므로 환경이라는 생태적인 차원에서의 자신의 삶은

넥서스(집단 또는 계열내의 개인(개체)끼리의 관력, 유대, 관

계, 연결, 결합체)라고 하여 존재계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그물망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는 주

망으로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아라는 존재와

타아라는 존재들은 모두 하나의 생명 그물로 얼기설

기 조화롭게 얼켜있으며 상호 연관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상호

의존적입니다.

 

깨달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물론 무아가 되기 때문에 의

존성이 없어지나 지구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상 육체를 지

니고 있기 때문에 인과의 흐름 속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는 삶

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좋은 에너지를 제공하며 세

상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것이 바로 그물과 같이 넥서스 조직체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의

삶입니다.

 

또한 이 지구는 가이아라고 불리며, 이 가이아는 정교

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힘들의 시스템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

가 있습니다.  불제자들은 힘들의 세계를 뚫고 지나가면서 경험

을 쌓고 배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조화시키거나 자신

에게 중압적 영향을 가하는 세력들을 극복하고 헤쳐나감으로써

성취를 얻게 됩니다.  자신에게 압력을 가하는 존재의 세력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돕는 존재의 세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수

행의 통과 의례와 같은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그 터널

의 끝에는 깨달음의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큰스님께서 역설하신 견성

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마치 소년소녀 시절 밤하늘의

미리내은하수를 바라보면서 깊은 정취와 무한한 동경 속

에 빠져들었던 시절로 되돌아가게 해줍니다.  아니 그 이상의

형용할 수 없는 감명과 감동을 아나하타 차크라와 아즈나 차크

라에 전해줍니다.  맑고 선명한 깨끗함과 자비로움 그리고 온화

함이 어우러져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밝게 해줍니다.  <<21세

기 붓다의 메시지>> 하나의 거대한 주망처럼 불보살님의

환희의 세계를 우리의 정신세계에 투영해 줍니다.

 

 

업 

 

 

힌두교에서나 불교에서는 업을 이야기합니다.  즉, 과거 생에

좋은 업을 쌓으면 현생에 좋은 과보를 받고 현생에 좋은 업을

쌓으면 미래 생에 좋은 과보를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과거 생에 나쁜 업을 쌓으면 현생에 나쁜 과보를 받고 현생에

나쁜 업을 쌓으면 미래 생에 좋지 못한 과보를 받게 된다는 가

르침입니다.  부처님은 간명하게 선인선과 악인악과

라고 하여 좋은 원인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고 나쁜 원인

은 나쁜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는 종교에서는 업의 존재를 잘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

한 업의 중요성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명료하게 새겨

져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그렇게 당부하시는 말씀은 선근 보따

리를 키우는 것, 즉 복을 지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이유는 선

근 보따리만이 전생의 죄업을 사할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나 전

무쟁투한 깨달음을 구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수많은 주옥

같은 항목으로 일목요연하고 유기적으로 설파하고 계시다는 점

에서 21세기 불교의 총체적 가르침의 정수를 초출한 금자탑

임에 틀림없습니다.

 

 

 

두타행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구도자들과 불제자들에게 누

차 강조한 두타행은 '나 없는 수행'을 지어가는 것을 의미합니

다.  큰스님께서는 과거 마하가섭이나 아짠문 수행승처럼 치열한

두타행을 지어나갈  것을 재삼 강조하셨습니다.  즉, 수행 도중

구렁이가 와도 끔쩍하지 않으며 문둥이가 와도 거리낌을 내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스님 말씀대로

'나 없는 수행'을 통해 무아를 증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공를 철견한 후 모든 집착과 상을 떼어 가는 과정이

두타행이다."라고 두타행을 어는 수순으로 수행해 나가야할 지

에 대한 실용적 의미를 불제자들에게 지극히 명료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많은 종교 영성서적이나 명상 수

행서적에서 잘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내용이며, 구도하는 불제

자에게 매우 실재적이고 도움이 되는 알찬 정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극히 명료한 필체로 서술해 나가시는 큰스님의

법필은 매우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동시에 심금을 울립니다.

 

 

 

 

출처/붓다의 메시지 존평